* 채권 매도세와 주식 급등세로 '그레이트 로테이션' 가능성 고개 들어
* 미 대선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약 2조달러 증발해
* 애널리스트들, "아직 '그레이트 로테이션'이라 말하기엔 이르지만 신호는 나타나"
* 인플레와 재정정책에 대한 전망이 채권에서 주식으로의 이동을 촉발해
런던, 11월28일 (로이터) - 전 세계적으로 채권시장에 투입됐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대순환'(그레이트 로테이션, Great Rotation)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11월 8일 차기 미국 대통령에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2조달러에 육박하는 자금이 증발했다. 앞으로의 경제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에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 증시에서는 연일 사상 최고치가 경신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AML)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 대선 이후 11월 16일까지 한 주 동안 주식시장에 2년래 최대 규모인 280억달러가 유입됐다. 한편 채권시장에서는 3년 반 만에 최대 규모인 180억달러가 유출돼, 두 시장 간의 자금 유출입 격차가 주간 기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뱅크오브아메리카가 2011년 처음 사용한 '그레이트 로테이션' 현상으로 규정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실현될 거라 전망할 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애널리스트들은 타이트해진 미국 고용시장과 경제성장 강화를 알리는 신호들이 높아지는 인플레 리스크를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둘째,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정부의 정책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재정지출 확대를 공언해왔으며, 지난주 영국은 인프라 프로젝트에 29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출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의 차입이 확대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인플레 압력을 높이는 또다른 요인이 될 것이다. 나아가 수익률이 매우 낮은 채권시장의 활황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30년 간 강세를 펼쳤던 채권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면, 투자자들이 채권시장에 투자했던 수 천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겨 궁극적으로 증시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전에도 이 같은 '그레이트 로테이션' 조짐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시작만 하다 끝났다는 점이다.
픽테자산운용의 수석전략가인 루카 파오리니는 "'현재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나타나고 있는냐'는 질문을 전에도 여러 번 받은 적 있다"며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엄청난 인플레 리스크를 목격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전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 상승 조짐이 나타나자 독일 채권 수익률은 지난해 4월 말 ~ 6월에 기록한 사상 최저치에서 급격히 상승했다. 다만 독일이 계속해서 디플레 압력에 시달릴 것을 신호하는 데이터가 나오면서 수익률은 다시 하락했다.
2013년 소위 '긴축발작'(taper tantrum) 당시, 투자자들이 미국의 통화적 경기부양책 축소에 베팅하면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0bp 이상 올랐다. 이후 미 수익률 또한 하락세로 돌아서 올해 초에는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경기부양을 위해 한동안 긴축을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이는 올해 들어 첫 인상이 된다.
◆ 전환점 될까?
하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수정되면서 앞으로의 금리 전망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시장은 내년 연준이 한 차례 이상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기 시작했다. 2017년에 연준이 한 차례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50% 미만으로 반영했던 미 대선 이전과 확연히 다른 변화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레이트 로테이션의 초기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JP모간은 지난주 미국 증시의 상장지수펀드(ETF)에 사상 최대의 자금이 유입되고, 같은 기간 채권 ETF에서는 사상 최대의 자금이 유출된 점에 주목했다.
주식시장 내에서도 수익률이 높아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유틸리티주, 텔레콤주, 헬스케어주 등 배당급을 지급하는 소위 '채권 대용주'(bond proxies)에서 이탈한 자금이 은행주, 산업주, 원자재 관련주 등 좀 더 경기순환적 업종으로의 대규모 이동하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의 매력이 퇴색하고 있다는 점은 전반적인 자산클래스가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할 것을 알리는 전조로 볼 수 있다. 경제 성장과 인플레 강화 시기에 투자자들이 증시에 좀 더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이러한 트렌드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원자재주와 에너지주는 올해 들어 각각 20% 가량 오르며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세계 지수 .MIWD00000PUS 가운데 가장 선전하고 있다. 반면 헬스케어주, 유틸리티주, 식품 및 음료 관련주는 가장 부진하며 올해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있는 유일한 업종이다.
알더블유베어드의 마이클 안토넬리 법인담당 트레이더는 "아직 그레이트 로테이션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지금껏 지켜본 중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한 뒤 "돈은 성과를 따르기 마련"이라며 주식형 펀드가 앞으로 강력한 성과를 낼 가능성을 넌지시 내비쳤다.
투자자들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투자금을 지속적으로 회수한다면 이 또한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마켓츠의 마이클 메트칼프 매크로전략 헤드는 "우리는 거액의 자금이 채권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이러한 투매세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가 사실상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자들이 투매세에 굴복해 이에 합류한다면 로테이션을 현실화할 다음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온적인 로테이션에 그칠까?
만약 실제로 로테이션이 발생한면 이는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채권시장에서 수 년 만에 가장 강력한 매도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인플레 압력이 크지 않고,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쳐 채권시장에 일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딘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로존 지역에서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은 안전자산인 독일 채권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를 반영하듯 26일(현지시간) 독일 국채 2년물 수익률은 -0.7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JP모간자산운용의 채권담당 최고운용담당자(CIF)인 닉 가트사이드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를테면 소매투자자 등 채권 보유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그레이트 로테이션의 실현 여부는 채권을 추가 매수 또는 매도할 세력(marginal buyer or seller)이 누구인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편집 손효정 기자)